최종편집  2021-12-03 (금) 18:10

(가을 想念) 고향 가는 길

이철희 기자
기사등록 : 2021-09-27 14:05

가다 서다를 반복, 세상의 모든 차는 고속도로에 줄 서있는 듯 자동차가 달려야 할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된 듯하다. 그런데도 운전대를 잡은 이는 만면에 미소가 완연하다.
어김없이 올해도 추석명절은 다가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이의 시름이 일상인대도 우리 곁에 다가온 추석명절 만큼은 시름을 잊게 한다.


명절 때면 마을 어귀까지 나와 먼 길 운전을 하며 고향을 찾은 자식을 맨 먼저 맞이 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영원히 볼 수가 없다.
아침 일찍 출발한 귀성길은 이내 어스름한 어둠이 감싸오고 서늘한 바람이 느껴질 때 쯤 저 멀리서 익숙한 마을전경을 발견할 때면 온 삭신에 찾아온 피곤쯤이야 남의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골치 아픈 이야기에 때로는 묻지 말아야 할 것도 술기운을 빌어 묻는 짓궂은 이도 늘상 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같은 핏줄들을 만나는 것은 불편함보단 반가움이 먼저다. 나이가 들면서 이는 더하다.


아울러 부족하나마 준비해 온 선물을 트렁크에서 꺼내며 대문을 열고 도착했음을 알리는 그 순간, 반기는 사람들이 달려 나오고 이 찰나가 우리 명절의 전부이자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반기는 웃음에 때로 무거운 시간도, 때로 아픈 시간도, 안개 속 같은 앞으로의 길에 대한 걱정마저 한 귀퉁이부터 녹아들고, 다들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리면 그간 뻣뻣했던 어깨도 서서히 풀어지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반기는 이도 많지 않고 달랑 허리 굽은 팔십 넘은 노모의 나지막이 반기는 목소리가 콧등을 찡하게 한다.
그래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는 돌아왔다. 동그란 달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테고 시골의 밤하늘도 항시 고즈넉하고 여유로움이 넘친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집은 모든 것이 낯설다. 노모께서 차려주신 머슴밥에 허기를 달랜다. 자식이 온다는 기별을 듣고 십일 시장에 읍내 장까지 노구를 끌고 이것저것 장만해서 준비한 각종 음식들을 한상차려 내주신다. 갈수록 왜소해져 가는 노모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색함이 원망처럼 느껴진다. 첫마디 인사로 건강은 어떠시냐고 여쭙자 당신 건강보다는 아들 걱정에 눈시울을 적시신다. 집안 곳곳을 둘러본다. 눈길을 끄는 한 장면에서 숙연함이 느껴졌다. 옛날 집안의 살림밑천을 위해 키우던 돼지우리 터 조그만 노는 땅에다 쪽파, 가지, 상추 등 갖가지 야채를 심어놓으셨다. 잡초하나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땅 한 평 놀리지 않는 천성이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왠지 존경과 숙연함, 짠한 마음이 교차한다.
들판이 누렇게 변해가고 하늘은 높아가며 잠자리 떼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


새팍(대문) 옆엔 이름 모를 풀들이 나름 생명력을 보이며 자태를 뿜어내고 있다. 누군가 손을 대지 않으면 내년에도 길가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겠지...
풍요로운 가을이다. 시골 곳곳에 가을 내음 천지다. 가을이 오면 한 해가 얼마 남지 않는다.
추석 한가위 보름달이 동편 재피골 함박산에서 피워 오른다. 저 달 속에 모든 시름과 아픔을 날려 보낸다. 언제 봐도 내 고향은 한 폭의 그림이요. 요람처럼 느껴진다.

 

 

짐을 내려놓고 마을입구에 영면에 계신 아버지께 인사를 드린다.
아버지 산소에 한 송이 국화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아버지는 내 삶의 큰 스승이셨다.
아버지 덕분에 내 기준으로 아버지의 삶을 이어 받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다보니 이제 아버지에게 갈 나이가 되었다.
내가 가면 입천장을 드러내시고 박장대소를 하시며 좋아하시던 그 아버지가 보고 싶다.
생전에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찬바람이 얼굴을 에이던 한 시한에 저 희미한 山들 너머 북망산천에 훨훨 단신으로 가신 큰 스승 이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가
객지에서 서럽고 쓸쓸하고 고단하여 달이라도 쳐다보고 싶을 때 달려가 건너고 싶은 강이 있고 오르고 싶은 산이 있고 걷고 싶은 들길이 있고 등목하고 싶은 우물이 있는 집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고향을 노래했다.


아~ 이 밤이 새면 나는 또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한다.
그런대 어쩌나, 홀로계신 노모의 손을 놓고 떠나가는 나그네 신세가 되니.
내가 부모가 됐어도 지금의 내 엄니가 내게 베풀어주신 온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부천프라임뉴스 김병화 논설위원)

ⓒ 부천프라임뉴스(www.bcprime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 부천시 석천로170번길 19, 502호(중동, 부광프라자)  | 전화 : 032-325-1066 | 메일 :

사업자등록번호 : 411-60-00373 | 대표 : 이철희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아52008 | 등록일 : 2018-11-07 | 발행인 및 편집인 : 이철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철희

부천프라임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부천프라임뉴스.  All Rights reserved.